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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과학, 자연

상온 양자 스핀 펌핑, 스핀트로닉스의 새 지평이 열리다

by jitoworld 2025. 2. 1.
상온 양자 스핀 펌핑: 스핀트로닉스의 새 지평이 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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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온 양자 스핀 펌핑이란?

    상온 양자 스핀 펌핑, 스핀트로닉스의 새 지평이 열리다

    국내 연구진이 세계 최초로 상온에서 양자역학적 스핀 펌핑 현상을 관측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동안 대부분의 양자기술 연구가 극저온 환경에서 이뤄졌던 점을 떠올리면, 이번 발견은 양자현상의 상온 구현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에서 상당히 의미 깊다.

    게다가 실험 결과, 기존 고전역학적 방식보다 10배 이상 강력한 스핀 전류를 만들어냈다고 하니, 미래 전자소자 기술인 스핀트로닉스(spintronics)가 한층 가까워진 느낌이다.


    핵심 연구 주체와 학술지 게재

    이번 성과는 이경진·김갑진 교수(KAIST), 정명화 교수(서강대) 공동연구팀이 함께 이룬 것으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와 한국연구재단 등의 지원을 받아 진행됐다.

    최종 논문은 네이처(Nature)“Signatures of longitudinal spin pumping in a magnetic phase transition”이라는 제목으로 게재되어 학계의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스핀과 스핀트로닉스, 왜 중요한가

    전자(electron)는 전하(charge)와 스핀(spin)이라는 두 가지 성질을 동시에 가진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전자기기(스마트폰, 컴퓨터 등)는 대부분 전자의 전하 전류(charge current)를 기반으로 작동한다.

    이때 전자가 물질 내부 원자들과 충돌해 열이 발생하고, 그로 인해 에너지 효율이 떨어지고 발열 문제가 심각해지는 단점이 있다.

    이러한 열 발생 문제를 극복하고자 주목받는 기술이 바로 스핀트로닉스(spintronics)다. 스핀트로닉스는 전하 대신 전자의 스핀(자기적 성질)을 이용해 전자 소자를 구동하는 기술로, 발열을 줄이고 빠른 정보 처리가 가능하며, 집적도 향상과 저전력 특성을 갖출 수 있다고 알려졌다.

    미래기술
    미래기술 상상이미지


    스핀 펌핑(Spin Pumping)이란 무엇인가

    스핀트로닉스 구현을 위해선 스핀 전류(spin current)를 효율적으로 생성해야 한다. 스핀 전류는 전하 이동 없이 스핀만 이동하는 형태의 전류를 의미한다. 이를 만들어내는 여러 방법 중 하나가 스핀 펌핑이다.

    스핀 펌핑은 자성체(magnetic material)비자성체(non-magnetic material)가 접합된 구조에서 발생한다. 자성체 내부의 전자 스핀이 세차 운동(precession, 즉 팽이를 돌렸을 때 생기는 회전 운동)으로 요동칠 때, 그 스핀이 비자성체로 흘러들어 가는 현상을 “펌핑”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하지만 전통적으로는 고전역학적인 세차운동에 의해 발생하는 스핀 전류가 생각보다 크지 않아, 실용화에 한계가 있어왔다.


    양자역학적 스핀 펌핑이 가져올 변화

    이번 연구의 가장 큰 의의는, 스핀 운동이 단순한 고전역학적 세차가 아니라 양자적인 특성을 반영해 움직인다는 사실을 상온에서도 관측했다는 점이다.

    보통 양자현상이라 하면 극저온에서만 발생한다는 인식이 강한데, 이번에 상온에서도 고전적 방식보다 10배 이상 강력한 스핀 전류가 확인되었다.

    결과적으로, 스핀트로닉스 적용에 있어 “더 적은 에너지로, 더 큰 스핀 전류를 얻는다”는 큰 이점이 생긴 셈이다. 이는 향후 반도체, 메모리, 컴퓨팅 등 다양한 전자소자 분야에서 지금보다 훨씬 고성능, 저전력 기기를 개발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Fe-Rh 자성박막: 고품질 소재의 중요성

    한편, 이번 상온 양자 스핀 펌핑을 실현하기 위해 연구팀은 Fe(철)-Rh(로듐) 자성박막을 고품질로 제작했다. 자성박막은 원자 한두 겹 수준으로 얇은 박막에 자성 특성을 집어넣은 소재다.


    • Fe (철): 비교적 흔히 볼 수 있는 자성 원소
    • Rh (로듐): 귀금속 계열의 금속, 촉매나 특수합금 등에 주로 쓰이며 물성이 강해 고온·고압 환경에서도 안정적

    이를 적층하거나 합금 형태로 제작해 정확한 두께와 조성을 유지하면, 자성체 내부에서 스핀이 독특한 상호작용을 일으킨다. 연구팀은 이미 2019년 Nature Materials에 “Long-range chiral exchange interaction in synthetic antiferromagnets”라는 논문을 게재해, 자성박막에서 스핀 상호작용 관련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그때 축적한 기술력이 이번 대형 성과로 이어진 것이다.


    공동연구, 이론과 실험의 시너지

    연구팀은 이 자성박막에서 관측되는 독특한 스핀 거동을 이론적으로 해석하고, 추가 실험으로 검증하는 과정을 거쳤다. 김갑진·정명화 교수팀이 실험을 주도해 상온 양자 스핀 펌핑을 관측했고, 이경진 교수팀이 양자역학적 이론 해석으로 이를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기초과학 연구는 길고 더딘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렇게 재료 제작, 현상 관측, 이론 분석까지 서로 긴밀히 협력한 덕분에, 극적으로 세계 최고 권위의 학술지 Nature에 성과를 발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기초연구에 힘쓰는 연구팀이 협업해 만든 결과라는 점은 한국 과학계에 있어서도 큰 자산이 아닐 수 없다.




    스핀트로닉스, 어디까지 확장될까

    현재도 자성 메모리(MRAM)나 자기저항(RAM) 등에서 스핀트로닉스 원리를 응용한 반도체 소자들이 연구되고 있다. 그러나 발열 문제, 소형화 과정에서의 한계, 극저온·특수한 환경이 필요한 양자특성 활용의 어려움 등으로 대중화가 빠르게 이뤄지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번 상온에서의 스핀 펌핑 관측은 그 벽을 허무는 첫걸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핀 전류 생성률이 10배 이상 올라간다면, 전력 소모나 발열을 최소화하면서 더 높은 효율로 정보 처리를 수행할 수 있게 될 가능성이 크다. 결과적으로, 더 작고 강력한 전자소자를 설계할 수 있어 미래 IT 산업 전반에 걸쳐 큰 변화를 몰고 올 수도 있다.



    기술이 가져다줄 새로운 미래

    전통적으로 양자역학적 현상은 극저온(슈퍼컴퓨터용 냉각장치 등)에서만 구현된다는 인식이 강했다. 그렇지만 이번 상온 양자 스핀 펌핑 관측은 “양자는 멀리 있는 기술이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해주는 듯하다. 고온에서도 양자특성을 끌어낼 수 있다면, 실용화 및 대중화의 속도는 더욱 빨라질 수밖에 없다.


    미래에는 우리가 사용하는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혹은 다양한 IoT 기기들에 스핀트로닉스가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더 빠르고 더 효율적인 세상이 열릴지 모른다. 물론 여전히 기초적인 연구 단계이고, 해결해야 할 숙제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성과가 “고전역학에서 양자역학으로 넘어가는 스핀 운동의 발견”이라는 점에서 폭발적인 파급효과가 예상된다.


    언젠가 양자의 문턱을 넘어서는 기술이 우리 곁에 완전히 스며든다면, 발열 문제로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전자소자, 초고속 연산이 가능한 컴퓨팅, 에너지 효율이 극대화된 산업들이 현실화될지도 모르겠다. 이번 연구가 그 길을 밝히는 큰 등불이 되어주길 기대한다.